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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와 성화 is unavailable, but you can change that!

한국 교회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은 윤리와 분리된, 왜곡된 칭의론을 복음이라고 선포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은혜로만, 믿음으로만 의인 됨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의인 된 그리스도인들은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우리의 행위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고 역설합니다. 전통적으로 개신교는 바울의 이러한 칭의론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은혜와 믿음에 의한 ‘칭의’ 뒤에 윤리적 삶을 요구하는 ‘성화’의 과정이 있다는 ‘구원의 서정’론의 구도로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세윤 교수는 바울의 칭의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칭의를 ‘무죄 선언’ 또는 ‘의인이라 칭함’의 법정적 의미와 함께, ‘주권의 전이’, 즉 사탄의...

둘 다 우리가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됨, 그의 거룩하고 의로운 백성 됨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칭의’는 유대주의자들의 율법 지킴에 대한 요구에 맞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범주입니다. 즉, 복음을 모든 사람이(이방인들까지도) 율법의 행위 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덕 입어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회복되어 ‘의인’ 되고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게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힘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대주의자들과의 논쟁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쓴 로마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3장 등에 ‘칭의’가 현저히 나타납니다. 그 서신들에서는 ‘구원에 있어 율법 지킴이 필요한가?’의 문제가 게재되니까 바울이 법정 언어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나 고린도전서의 상황에서는 바울이 ‘구원을 위하여 율법 지킴이 필요하다’라는 유대주의자들의 주장과 맞서 논쟁하지 않습니다.
Pages 182–183